“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권해서 배우기 시작한 게 벌써 1년이 넘었네요. 배운대로 집에서 술을 빚어 주말마다 남편과 시음을 겸한 대작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부부 대화가 많아졌어요.”
“제사나 명절 때도 가양주로 잔을 올리고 주변에 선물도 많이 해요. 물론 내가 직접 담근 술이라서 그런지 마지막 한방울까지 아깝지만, 맛이 좋다는 칭찬을 듣는 재미에 계속 술을 빚어 내놓고 돼요.”
“고슬밥이 누룩죽이 될 때까지 비벼야 술 맛이 깊어진데요. 손도 오히려 고와지니까 염려말고 기운차게 빚어보세요. 힘들면 송화주 한잔 들고들 할까요?”
서울 녹번동의 한 빌딩 3층에 자리한 한국전통주연구소의 술방에서는 3개월에 한번씩 전국 곳곳에서 전통술빚기 재미에 푹 빠진 남녀 회원들과 우리 술 맛에 취한 애주가들이 모여 들어 시음회 잔치를 연다. 올해로 17년째 우리 고유의 술맛을 되살리는 데 몰두해온 박록담 소장(43)이 지난해 3월 국내 첫 전통술 연구와 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이곳에서는 130여가지 전통술 빚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누룩빚기부터 막걸리 찹쌀동동주 청주 절기주 약주 소주 등 기본적인 가양주(일반 가정에서 빚은 술)를 빚는 법에서부터 향기나는 술, 보약주, 궁중술, 백하주, 방문주, 감향주, 청명향 등 고급술 빚는 법까지 6개 과정이 있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 건강이 염려되서 독하지 않고 잘 마시면 보약도 되는 가양주들을 찾아다니다 우리 고유 술맛의 전통도 맥이 끊겨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결국 전통 술 되살리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는 박 소장은 지금껏 380가지 전통술 종류를 찾아냈고, 이 가운데 218가지를 재현해냈다. 이 중 103가지의 유래와 빚는 법 등을 정리해 조만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일제와 박정희시대의 밀주금지령 등으로 우리 술의 맛과 운치가 사라지면서 음주문화가 독한 양주에 폭탄주까지 2차, 3차로 이어지는 등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는 전통주 빚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초기에는 술 자체보다는 우리 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였으나 최근에는 가양주를 배우려는 주부들, 식사와 곁들여 특화된 술 메뉴를 개발하려는 음식점 경영주들, 아예 창업을 하려는 이들까지 수요가 다양해지고 있다. 수강생 대부분은 여성이지만 은퇴한 뒤 전원생활을 하면서 좋은 술을 빚어 손님들을 접대하며 살겠다며 찾아오는 중년 남성도 있다.
단순히 술빚는 기술을 배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우리 술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전국의 술도가를 답사하며 이론과 실기를 공부하며 우리 문화 가꾸기에 앞장서는 `전통주 연구반'도 생겼다.
이달부터는 내년 월드컵 개최에 대비해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을 대상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맛과 멋을 술빚기 체험과 시음회 등을 통해 알려주는 `문화탐험'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02)389-8611.
-인터넷 한겨레 발췌-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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