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쓰는 술에서 나온말 (上)
[업코리아 2004-08-12 12:55]
옛 사람들은 술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술을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 중에서 가장 술을 마음놓고 표현하지 못한 사람은 절에 있는 스님인지라, 이들은 술을 반야탕(般若湯)이라고 불렀다.
즉 만유의 실상을 증험한다는 뜻을 가진 반야(般若)라는 말에 슬그머니 떠먹는 국물을 뜻하는 탕(湯)을 붙여 만든 것이다. 불교에서는 음주를 금하기 때문에 중들이 몰래 마시면서 쓰는 말이다. 또 곡차라는 말도 한자로 穀茶, 曲茶, 茶 등으로 표기해 가면서 중들이 즐겨 쓰는 술에 대한 은어라고 볼 수 있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점잖게 미록(美祿)이라고 불렀다. 즉 후한 봉록, 많은 봉급이라는 뜻으로 한서(漢書)의『식화지(食貨志)』에서 나오는 '술은 천하의 미록'이란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리고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망우물(忘憂物) 혹은 차망우물(此忘憂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렇듯 술은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은근하게 하는 것이 그 맛과 멋을 더해주는지 모른다.
사람의 나이가 칠십이 되면 칠순이라고 큰 잔치를 벌린다. 이 칠십의 나이를 우리는 고희(古稀)라고 하는데, 이 말이 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두보(杜甫)의 시 『곡강이수기이(曲江二首其二)』 에서 '주체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즉 '술 외상값은 어차피 가는 곳마다 있는 것이지만, 인생 칠십은 옛부터 드문 일이다'라는 뜻이다. 현대에는 '고희'란 말만 보기 드문 나이에 달한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지만, 술과 외상은 이렇듯 그 옛날부터 뿌리가 깊은 것으로 그 전통은 오늘날 룸살롱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외상 술을 안주는 술집은 인간지사를 무시하는 곳으로 술꾼들은 구태여 그쪽에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없다.
흔히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면 천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조강(糟糠)'이란 술지게미와 쌀겨를 일컫는 말이다. 못살던 시절 부잣집에 가서 일하면서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와 벼를 도정하고 남은 쌀겨를 얻어다가 공부하는 남편을 먹여 살리던 그야말로 '어여쁠 것도 없이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과거에 합격하더니 고생한 아내를 버리고 젊고 예쁜 각시를 새로 얻으니, 필시 본인보다는 동네사람이 더 분통이 터져 갖다 붙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술을 구하기 힘들어 물을 놓고 제사를 지냈고, 사정이 넉넉하더라도 정화수라하여 물을 떠놓고 소원을 비는 일이 많았는데, 밤에 물빛이 검게 보이므로 이를 현주(玄酒) 즉 '검은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흔한 물이지만 특별한 용도로 쓰이는 영험한 물이라 생각하여 기어이 술로 표현한 것이다.
술을 점잖은 말로 약주(藥酒)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부터 청주나 술의 높임말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본래 약주는 약효가 있는 약용주를 말한다. 그러나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술을 약주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나라에 흉년이 들어 금주령을 내릴 때 높은 사람들이 몰래 청주를 마시면서 약용주를 마시는 척 했기 때문에, 점잖은 이가 마시는 술을 약주라 하고 더 나아가 청주를 약주라고한 것이다.
또 조선시대 서울의 약현(藥峴:지금의 중림동)에 서성(徐 , 1558-1631)의 어머니가 남편을 잃고 가난하여 술장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집의 청주가 매우 좋았고, 서성의 호가 약봉(藥峰)이며 또 약현(藥峴)에 살았기 때문에 청주를 약주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쩐지 먼저 소개한 약주의 유래가 더 인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금님이 술을 못 마시게 했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감춰둔 술을 마시면서 수염을 가다듬고 쓴 표정을 지으며 약을 먹는 척 했으니 꼭 몰래카메라를 보는 듯하다.
김준철 (서울와인스쿨 원장)
연우포럼 제공
www.younwooforum.com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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