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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허시명의 술빚는 마을을 찾아서>40도 쌀술 한모금에 혀끝이 `알싸~`

(::경기 광주 남한산성 ::)


남한산성에 오르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그래서 오늘은 못 오르려나 했는데, 점심을 먹고나니 날이 갰다. 해는 나지않았지만 시야는 좋았다.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성남 시내까지는좋았다. 그런데 남한산성 굽이길을 오르자 산안개가 산성을 감싸고 있었다. 남문에 다다르니 구름 속인지 안개속인지 구분하기어려웠고, 남문 밑에서도 남문 현판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구름 속을 걷듯 성벽을 따라 걸었다. 남한산성 본성의 총길이가9㎞, 옹성의 길이는 2.7㎞다.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 일주하면 3시간쯤 걸린다. 남문에서 북쪽으로 1㎞쯤 오르니 수어장대가 나온다. 수어장대는 인조 2년(1624)에 단층으로 지은 것을 영조 27년(1751)에 2층 누각을 증축했다. 층간 높이는 낮지만, 아주 야무지게 버티고 선 남한산성의 총지휘부다.


남한산성을 상징하는, 오래되고 멋진 건축물이다.

서문과 연주봉에서는 서울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오늘은 기대할 수가 없다. 한창 복원중인 행궁을 지나 남한산성 광장으로 내려왔다. 구름 안개가 지나가니, 서늘하고 습기가 많았다.


비는 뿌리지 않았지만, 몸이 촉촉이 젖어오는 것 같았다. 산밑과 다른 이런 기후 조건이 산성을 누룩 디디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남한산성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부산금정산성의 누룩이 유명하다. 부산 시민의 유원지가 되어 염소불고기 음식점들로 탈바꿈하기 전까지는 누룩을 디뎌서 생계를유지하고 자식을 가르치던 동네였다. 지금도 금정산성에는 누룩디디는 이들이 있고 누룩방도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전통누룩 특구로 지정될 만한 곳이다.


남한산성에서도 누룩을 만들어 외지에 팔았던 적이 있다. 남한산성 토박이인 김유순(88)씨는 18살 시집오기 전에 누룩 디디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지금의 경로당 부근에 누룩창고가 있었는데, 남자일꾼들이 천장에 매달린 끈을 한 손으로 잡고 발뒤꿈치로누룩을 디뎠다. 쑥대를 한짐씩 구해와서, 쑥대 위에다가 누룩을쌓고, 쑥대로 누룩을 덮었다. 밀기울로 만든 탁주용 누룩은 지름이 30㎝가 될 정도로 컸고, 약주용 누룩은 그보다 작았다. 그누룩은 성밖 사람들에게 잘 팔려나갔다. 그런 광경도 김유순씨가시집온 뒤로, 밀주단속이 심해지면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고한다.


누룩이 좋으면, 맛있는 술이 절로 따라붙게 돼있다. 그래서 산성을 근거지로 삼은 유명한 술이 존재한다. 부산 금정산성엔 산성막걸리, 청주 상당산성엔 대추술, 그리고 남한산성 소주가 있다.


산성 마을은 외부와 격리돼 있어서, 밀주단속이 심했던 시절에도 자신의 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산성막걸리와 대추술은 성벽을 쌓던 노역자나 성벽을 지키던 무인들과 인연이 있는 술로 여겨진다. 집단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빚었던 술로 보인다. 그러나남한산성의 소주는 다르다.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숙종 때 이미 1000호가 모여 살던 번성한 동네였다.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음식도나물 반찬이 20여 가지가 나오는 정식이다. 무인들이 주둔한 마을이라기보다는, 서울에 근접한 귀족적 풍모가 느껴지는 동네다.


남한산성 소주도 그 안에서 배태되었다. 남한산성 소주의 족보는 희미하다. 일제시대에 남한산성에 살던 이종숙(1960년대 작고)씨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에 남한산성에서 소주가 어떻게 음용되었는지 전하는 기록이 없다. 광주 이씨인 이종숙씨는 송파나루에서 송파양조장을 운영하면서 ‘백제소주’를 만들어 팔았다. 지금도 송파구에 살고 있는 나이든 이들은 그 백제소주를 기억한다.


이종숙씨가 술도가를 그만둔 뒤로, 그 술도가에서 술을 빚었던강신만(1971년 작고)씨가 둘째 아들인 강석필(69)씨에게 술 빚는법을 가르쳐주었다. 강석필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술을 재현하여1994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 남한산성 소주 기능보유자가되었다.


남한산성의 소주는 40도다. 다른 약재가 들어가지도 않는 투명하고 맑은 증류주다. 이 소주의 차별성은 누룩과 술을 빚을 때에조청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전통 술을 빚을 때 당화력(糖化力)을강화하기 위해서 엿기름을 넣는 경우는 있지만, 조청을 곧바로투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누룩은 통밀을 빻아서 조청을 푼 물로 반죽한다. 이렇게 만든 누룩은 다른 누룩보다 더 단단하게 뭉쳐진다. 술을 빚을 때에 누룩과 멥쌀을 1대 3의 비율로 섞는데, 이때도 조청을 물에 약간(당도 14브릭스) 풀어서 사용한다. 술은 전체 분량의 30%로 밑술을담아 1주일간 발효시킨 뒤에 나머지 70% 분량으로 덧술을 담아보름 정도 발효시킨다. 그러면 13도 안팎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발효주가 된다. 이 발효주를 증류기에 넣고 끓여 소주를 받아낸다.


남한산성 소주의 맛은 40도의 높은 도수임에도 부드러운 편이다.

코끝을 치거나 눈물이 핑 돌 정도는 아니다. 한 모금 마시면 입술에 엷은 전류가 흐르는 듯하고, 혀끝이 알싸해진다. 쌀로 빚은소주라 타피오카(수입산 돼지감자)를 주원료로 만드는 희석식소주와 품격이 다르다. 입에 술을 머금고서 그 향과 맛을 음미할만하다.


남한산성 소주는 2001년에 처음 출시되었다. 저도주의 바람이 거센 현실에서 40도 소주가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살아남을 특별한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한산성소주는 다른 전통주들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2003년에 남한산성 활성화방안 15개 사업 중의 하나로 제안되어, 남한산성소주전시체험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남한산성 소주는 서울 인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일한 문화재급소주다. 경기도 김포에서 빚고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문배주는평양 술이고,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옥로주는 섬진강가의 화개술이다. 그런 점에서 남한산성 소주가 지역과 연계된 체험 공간을 마련하여 관광 상품화를 추진한다면 의미있는 일이다.


술은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유흥의 수단이 아니다. 술은 맛의 총화이고, 쌀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이다. 수입 쌀이 밀려들면서, 쌀 경작지를 줄이는 농가에 돈으로 보상해준다고 한다. 이는 농업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정책이다. 쌀 가공식품을 다각화해서, 쌀 생산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그 중요한코드 하나가 전통술의 부양이다. 우리 술은 쌀술이다. 좋은 쌀을생산하여, 좋은 술을 빚어내면, 양주를 대체하고 수출 효자상품이 될 수 있다. 희석식 소주의 수출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남한산성 소주가 광주 이천의 쌀을 원료로, 왕실도자기의 산지였던 광주요에서 만들어진 도자기에 담긴다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남한산성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으려면, 남한산성에서만 맛볼수 있는 맛과 향이 있어야 한다. 비슷한 식단의 음식점만 즐비한남한산성 안에, 전통 소줏고리에서 소주를 내려 맛보고, 천장에매달린 줄을 잡고 발뒤꿈치로 누룩을 디뎌보는 체험 공간이 있다면 남한산성이 한결 생기발랄해지지 않을까.▲남한산성 여행정보〓남한산성도립공원관리사무소 031-743-6610. 사전예약하면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만해 한용운선생의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 만해기념관 031-744-3300, 남한산성 상인협회 031-748-8492, 음식점 남문관(청국장, 산채비빔밥 031-743-6560), 반월정(산채정식 031-743-6562), 백제장(산채정식 031-743-4296)▲남한산성소주 구매정보〓200㎖, 400㎖, 700㎖ 용량과 선물 세트가 있다. 문의 및 택배주문 031-769-1100soolstory@empal.com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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